자본주의는 양극화를 부추기고, 신인본주의는 파편화를 부추긴다.

자본주의는 양극화를 부추기고, 신인본주의는 파편화를 부추긴다.

 

 

정치나 신문, 뉴스에 관심없는 사람들도 이 말을 들어봤을거다. 양극화라는 말. 버는 놈은 계속 벌어먹고, 재산증식하고 자자손손 유산으로 대물림하며 자신들의 지위를 단단히 하는 반면에 찢어지게 가난한 자들은 사회적 기회조차도 보장받지 못한채 소외속에서 살다가 그게 습관이 되어버려 영원히 하층민으로 살아가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쉽게 말하면 버는 놈은 계속 벌고, 가난한 놈은 계속 가난하게 사는데 그 차이가 도저히 건널수 없는 레테의 강처럼 넓고 깊어서 건널 엄두조차도 나지않는 것을 말한다.

 

양극화는 그렇다면 왜 일어나는 것인가?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양극화를 부추기는 가장 큰 이유이자 기본 바탕은 자본주의 때문이다. 기업들은 여전히 소품종 대량생산체제를 유지하고 싶어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게 제품원가가 줄어들어 기업의 이윤이 증가하기 때문에 그렇다. 대량생산이 가능한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이 탑재된 공장을 많이 가진 기업일수록 타기업보다 가격에 있어서 우위를 선점하게 된다.

 

비슷한 제품을 생산해내는 두 기업이 있다고 치자. A라는 제품을 생산하는 A라는 기업, B라는 제품을 생산하는 B라는 기업. 하지만 A기업은 B기업보다 공장의 수가 많다. 따라서 판매가격을 낮추더라도 B기업의 판매량 대비 이윤과 비교했을때 A기업은 그다지 손해를 보지 않는다. 그렇게 A의 가격이 낮아지게 되면 소비자는 A제품을 선택할수밖에 없게 된다. 비슷한 제품이라면 가격이 더 싼 제품에 끌리는게 가장 경제적인 선택이 아니던가. 이렇게 가격을 낮추어 상대방의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덤핑이라고 여길만큼의 가격경쟁력을 가진 기업은 뻔할정도로 대기업임에 분명하다. 중소기업들이 따라올수 없을정도의 자본력을 바탕으로 그들은 원가를 계속 낮춰가며 가격을 떨어뜨린다. 가격이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제품에 소비자가 몰리게 되고, 그와 비례하여 제품의 가격은 점점 낮아지게 된다. 규모의 경제가 실현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바야흐로 양극화 현상의 도래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돈 많은 기업은 돈없는 기업보다 시설투자를 더 많이 하게 된다. 그럴수록 돈많은 기업은 돈을 잃는게 아니다. 오히려 가격 경쟁력을 높여 더 큰 이득을 챙기게 되는것이다 .가진자가 더 가지게 되는 기현상. 심시티 같은 경영 시뮬레이션을 해본 사람이라면 알거다. 돈놀이라는게 더 많은 돈을 가진 사람일수록 적은 돈을 가진 사람보다 큰 돈을 벌게 되는 법이니까. 자본주의란 그렇다.

 

하지만 세상은 녹록치 않다. 아는 대로 돌아가지 않는 법이다. 누구나 더 싼 제품을 선택하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의 개성은 각자가 모두 다른 것이기에 일관되게 규정할수 없다 .따라서 취향이라는 개성의 논리가 통용되는 문화계는 양극화라는 극단에 몰리는 상황대신 취향따라 파편화되어 자기들끼리 헤쳐모이는 컬트적 사회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이건 정말 내 취향인데? 라고 생각했던 것이 나랑 잘 통한다는 가장 친한 친구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될 수도 있을 만큼 대중들의 취향은 고르지가 못하다. 이런 현상이 문화계에서만 지속되리라는 법도 없다.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기 위해 소비하는 세대답게 경제계와 문화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컬트화되는 대중들의 취향에 발맞추기 위해 어떤 기업은 고급화 전략을 쓰기도 하고, 감성 마케팅을 펼치기도 하고, 블루 오션을 개척해 취향의 차이로만 여겨졌던 부분까지도 쪼개어 철저히 상업화하고 있다.

 

이런 취향따라 모이는 집단중에 초고가 명품족 이라는 컬트적 집단들이 개망신을 당한 사건이 있었으니. -컬트적 집단을 형성하는 세대들을 -족, -남, -녀. 로 묶임당하여 취급되어지는 기성의 논리는 기성복마냥 안 맞는 느낌을 준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들에게는 이게 편한걸.- 바로 비싼거라면 사족을 못쓰는 초고가 명품족의 취향을 간파한 사기꾼이 초고가 시계라는 블루오션을 제멋대로 개척해 족보도 없이 지가 만든 짝퉁명품시계를 유명인사들에게 개당 2천여만원에 팔아넘기다가 구속당한 사건이 그것이었다. 이건아니잖아, 이건아니잖아.

 

한쪽은 여전히 양극화가 진행중이고, 한쪽은 개성을 왕으로 섬기며 지칠줄 모르는 파편화가 진행중이다. 자본주의는 양극화를 부추기고 있었고, 개성을 추구하는 인간 본성으로 돌아가려는 신 르네상스-신 인간본연주의-는 파편화를 부추기고 있었다. 도무지 동시대에 같이 있지 못할법한 상황을 겪으며 우린 살고있었다. 사회는 언제나 불완전한 존재였고, 과도기적 존재였다. 서로 반대방향을 걷는 듯한 변화들은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고, 날이 갈수록 진행되고 있을 것이었다. 그래서 인생이란 '적당히' 라는 단어가 통용되는 것인지도 몰랐다. 뜨거운 가슴과 신념을 가지고 극단을 살거나 제멋대로 욕망에 순종하며 살거나 하는 것이 정답이 아닌 만큼 말이다.

 

그래서 그들도, 나도 오늘을 '적당히' 살아가고 있는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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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적 칼럼이다.
조금 억지로 쓴 듯하다.

by 제레 | 2008/06/07 20:18 | 기억이핥은흔적(군대)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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