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의가을

낡은 대지 위에 새로운 바람이 분다.
바람에 날리는 풀씨같은 인생에도
한번은 찾아오는 신비로운 바람.
마법의 가을이여.
대마법사 핸드레이크의 가을은 짧았고
페어리퀸 다레니안의 가을은 끝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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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 사계절중 가장 좋은 계절로 나는 단연코 가을을 꼽고 싶다. -좋아하는 계절 겨울과 좋은 계절 가을은 엄연히 다르다.- 한없이 높아지고 깊어져 세상의 시름마저 훌쩍 갖고 꼬르륵 잠겨버릴 쪽빛 하늘도 하늘이었지만 무엇보다도 가을바다의 평화로움은 가을이라는 이름으로 명명되는 그 어떤 것들도 따라올수 없는 무엇이었다. 코스모스의 한들한들이나, 고추잠자리의 여유로운 비행, 따스한 햇살을 누그러뜨려주는 가을바람마저도 어찌 할수없는 가을바다의 청명함과 고요로움. 그것은 가을바다만의 매력이었다.

 

처량한 겨울 해변을 거닐어본 적이 있는가? 겨울 해변은 운치있었으나, 어딘가 쓸쓸한 기운을 감출수가 없게 했다. 겨울 해변도 잃어버리고 있었고, 나 또한 잃어버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잃어버린 자끼리 만나는 것은 쓸쓸함을 배가 되게 만들뿐이었지 서로 채워주지는 못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겨울 해변가는 처량했다.

 

해변과 바다는 달랐다. 땅을 딛고 바다를 사유한다는 것은 바다에 대한 모독이었다. 바다는 바다 그 자체로 느껴야할 자연이었지, 땅과 맞서 싸우는 전사의 모습을 가진 해변의 바다는 어딘가 고독했고, 아파보였다. 흰 거품을 뿜어대며 촤르르 물러서는 해변가의 바닷물은 바다가 흘린 아픔의 눈물탓에 더 짰을테고. 그래서 나는 바다가 좋았다. 북적대는 해변보다, 부둣가의 바다가 더 좋았다. 그것보다 더 좋은건 흔히들 망망대해라 부르는 널찍한 바다였다. 전후좌우 온통 바닷물에 가둬져, 바다와 하늘. 그 이상은 사유할수 없게 만드는 항해. 그 항해가 너무나도 좋았다. -물론, 바다가 얌전할때의 이야기다. 사나워진 바다에서의 항해는 끔찍한 기억들 뿐이다.-

 

가을 해변가는 어쩌면 겨울 해변보다 더 외로워할지도 몰랐다. 여름 피서기간 내내 인간을 양껏 받아내며 자연의 수용능력을 자랑하던 해변가는 폐장과 동시에 쓰레기들로 넘쳐났다. 마치 쓰레기를 심어놓은 양. 해변가엔 쓰레기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자라났다. 어느 유명한 해수욕장에선 수십톤의 쓰레기가 수거되었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려왔었다. 그러다 이젠 그런 이야기도 그쳤다. 뉴스거리도 안 될만큼 일상이 되어버린 것이었을까. 여름엔 인간을 받아내는 기쁨에 받아낼때의 아픔마저도 잊었었는데, 가을이 되자마자 정떨어진 연인을 버리듯 인간은 가을 해변에게 쓰레기만 안겨주고 훌쩍 떠나버렸다. 그래, 말을 조금 정정하자. 가을해변은 겨울해변보다 더 처량하고, 더 외로울 거라고.

 

겨울 해변과는 달리, 것보다 더 쓸쓸한 가을 해변과는 달리 가을 바다는 푸근했다. 가을 바다를 항해해 본적이 있는 사람은 알 거다. 가을 바다는 사계절 중의 그 어떤 바다들 보다도 우월하게 아름다웠다.

 

높은 파도와 추위, 그리고 강한 바람과 싸워야했던 겨울바다에서의 항해는 낭만이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미미했다. 오히려 끔찍, 이라던가, 호전성, 이라는 단어가 어울릴만한 바다였다. 영국의 대해적 드레이크 함대와 싸워야 했던 스페인의 무적함대는 혹, 겨울바다를 무대로 싸웠던 건 아닐까 상상해본다. 1년중 바다에 떠 있는 시간이 육지에 발을 딛던 시간보다 많아 무지막지한 겨울바다에 익숙했던 해적들과는 달리 급조된 무적함대는 펠리페 2세의 말처럼 적과 싸우기보다는 자연과 싸우는데에 더 힘을 쏟아야 했을 테니깐.

 

여름 바다의 혀를 빼 물만큼 지독한 더위때문에 시원한 바닷바람을 쐬기위해 갑판으로 올라갔었다. 하지만 소금기를 머금었던 바닷바람은 몸을 끈적해지게 만들었고 몇번이고 샤워를 해야만 했다. 무엇보다도 여름해변가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피서객들을 멀찍이 떨어져 바라봐야 한다는 사실이 싫었다. 여름엔 자고로 해변이었다. 정열과 일상의 피로를 잊는 여름해변은 뜨거웠기에 낭만이었고, 지글지글 타올랐기에 아름다웠다. 한때의 열정도 당시엔 아름답다못해 추종할만한 가치였으니까. 그에 비해 여름 바다는 여름 해변보다 낭만도 떨어졌고, 격도 떨어졌다. 여름엔 해변에 배깔고 누워 일광욕을 즐기던가, 사박사박 모래를 밟으며 해수욕을 즐기는게 제일이었다.

 

봄바다는 또 어떻던가. 봄바람난 봄처녀마냥 제멋대로 예측불가인 날씨탓에 봄바다는 겨울바다만큼이나 변덕스러웠다. 봄처녀는 도저히 통제불능의 아가씨였다. 흔히들 바다를 여자로 비유를 하곤 한다. 바닷물이 태반에서의 양수와도 같은 포근함을 준다는 게 그 이유였고, 샘물이 산골짜기에서 발하여 계곡을 지나, 시내를 지나, 강을 지나 마지막의 종착역이 바다였기에, 모태로의 회귀본능을 일으키는 대상이 바다였기에, 인간은 바다의 성을 여자로 제멋대로 설정해두고 감수성이라는 도구로 해석하곤 했다. 하지만 나는 바다가 여자라는 사실을 인정할수 없었다. 겨울바다의 광포한 파괴성을 가진 여성이라. 내가 알던 여성상과는 전혀 동떨어진 그 무엇이었다. 그러나 말괄량이 봄바다를 경험하고 나니 바다가 여성이라는 사실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갈대같은 여자의 마음처럼 봄바다는 어제의 바다 날씨와 오늘의 바다 날씨와 내일의 바다 날씨가 확연히 달랐다. 화창하고 잔잔한 날씨였다가도 자고 일어나면 어느새 황천 이급의 바다로 변해있곤 했던 봄바다는 특유의 변덕성때문에 두려움마저 일곤 했었다.

 

하지만 가을 바다는 달랐다. 한없이 늘어질수밖에 없는 가을바다의 항해는 평화로웠다. 아메리카 대륙의 서쪽 바다를 태평양이라고 명명했던 마젤란은 혹시 가을 바다를 항해했던건 아닐까 상상해봤다. 가도가도 끝이없는 태평양에서의 3개월간의 항해 속에서 마젤란은 조타실의 현측 갑판에 드러누워 빨려들듯한 가을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겠지. 그러면서도 자신의 함대가 지구를 최초로 한바퀴를 일주하게 된다는 사실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마젤란 함대의 소기의 목적이었던 신 항료 무역로 개척의 목표마저도 생각나지 않았을 것이다. 태평했던 가을 바다는 그것마저도 잊게 만들만큼 한가로웠을 테니깐.

 

그런 가을 바다를 뭐라 정의하면 좋을까. 풍류. 그래, 가을은 풍류의 계절이었다. 잔잔한 바다에 둥실 떠서 깊어진 하늘만큼의 넉넉함으로 모든 것을 포용하던 그것을 우리는 가을이라 불렀다. 나의 졸작 <무지개 날개>는 그럴 때 나왔다. 망망대해에 떠서 온갖 상념으로 가득 차던 그때 배의 함수를 바라봤다. 바다를 지치고 일으켜지던 물보라 가운데 홀로그램처럼 둥실 떠있던 무지개 날개. 딱딱한 강철에 무미건조한 회색 페인트로 덧칠했던 군함과는 정반대에 위치할 법한 무지개였다. 그러나 무지개의 알록달록한 색은 군함과 묘한 대조를 이루며 어울렸다. 군함의 단순한 색에 녹아들며 무지개는 그렇게 날개처럼 배의 현측에 달려있었다.

 

가을하늘은 또한 경이로웠다. 일년 중 시정이 가장 좋았던 것도 가을이었다. 저 멀리 30마일 너머까지도 나의 시선은 가닿았다. 바다위에서 금강산을 본 것도 가을이었다. 수평선 너머의 상선들도 망원경 없이도 빤히 보여졌다. 가을 바다에선 아무것도 숨길수 없었다. 농무기때의 바다안개도 없었고, 찌푸린 비구름도 찾아볼수 없었다. 가을 하늘은 쾌청했고, 청명했다. 가을 하늘을 캔버스 삼아 구름이 수놓였고, 이름모를 수많은 새들이 지들이 붓이라도 된 양 하늘을 훨훨 날아다녔다. 대한민국에선 어디로 눈을 돌리던 간에 시야 중에 산이 들어오기때문에 폐쇄적인 국민성이 발달했다는 말은 미안하지만 뱃사람들에겐 해당되지 않을 말이었다. 가을 바다의 가을 하늘은 시원하게 뻥 뚫려있어서, 그 가을바다를 경험한 뱃사람들은 가을 바다의 넉넉함을 닮아버렸다.

 

가을은 풍류를 즐기기에 넉넉한 계절이었다. 찌질했던 계급 가운데서도 순수하게 풍류를 즐기게 해줄만큼 가을은 한가위의 넉넉함만큼이나 운치를 퍼다주었다. 넘쳐났던 감수성은 같잖던 시로 흘려보냈고, 가을의 자연은 신선한 감수성을 매일 공급했다. 시를 쓰다 울어버렸고, <너는 내 운명>을 극장에서 보다 울어버렸다. 수평선에서 말갛게 고개를 비죽 내밀던 아침해에 감동받았고, 가득 차올라 한참을 퍼내도 계속일 것 같았던 저녁 보름달에도 감동받았다. 가을은 모든 감각을 깨워 살려내었다. 여름내 충천했던 자신의 기력을 쏟아주듯이.

 

가을 바다, 가을 하늘.


가을의 모든 자연은 가을이라는 직위를 붙이자마자 감성적으로 변했다.

마법의 단어, 가을.
아니, 마법의 가을.

 

가을- 이라고 한번 소리내 불러보자. 단, 가을을 부를때 심장을 조심했으면 한다. 가을- 이라고 부르는 순간 가을은 당신의 머리를 거치지 않고 심장을 직접 파고들어와 가을의 마법을 묻혀놓을 테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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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레 | 2008/06/07 20:16 | 기억이핥은흔적(군대)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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